경북신문이 주최한 `2020 신라왕들의 축제`에서 열린 학술대회 `포스트코로나시대 신라왕들에게 길을 묻다`에 참가한 학자들의 발표문을 연재한다. 신라왕들과 신라인의 창조적인 글로벌 의식과 혜안을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새롭게 전개될 세계를 적응하는 지혜를 얻기를 기대한다.
1. 쿠쉬나메란 어떤 책인가?
쿠쉬나메(Kushnameh)란 책은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이다. `쿠쉬의 책`이란 뜻이다.
쿠쉬는 이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영웅이다. 그 내용은 사산조 페르시아 멸망 전후인 7세기말 상황을 담고 있지만, 책으로 필사된 시점은 11세기 경이다. 페르시아 문학에서 서사시 전통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랍에게 나라를 뺏긴 이후 적대적 입지에 놓이게 된 페르시아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온전히 기록한다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위험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이슬람이라는 집합된 이념만이 절대적 가치로 자리 잡아가는 시대적 상황에서 이교인 조로아스터 전통에 뿌리를 둔 페르시아 문화는 억압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적 서술보다 서사시라는 은유적 전통이 강하게 전승되는 배경이다. 물론 당시는 기록의 역사보다는 기억의 전승이 훨씬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정체성 보존 방식이었다.
이러한 형식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 대표적인 페르시아 서사시 샤나메(Shahnameh), 즉 `왕서(王書)`다. 그에 비해 쿠쉬나메란 또 다른 서사시는 세계학계에 비교적 최근에 알려지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연구 중심은 우리나라가 되었다.
바로 쿠쉬나메에는 신라에 관한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쿠쉬나메도 역사 서사시 주류전통에 속하는 이슬람 이전 시기 영웅 스토리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저자도 샤나메의 저자인 페르다우시(Ferdowsi) 집필전통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다.
이란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전 서사시로 평가받는 쿠쉬나메는 총 1만 쿠플레(對句)가 넘는 방대한 양이다.
편찬자는 히즈라 5세기(서기 11세기)경의 대학자인 이란샤 이븐 압달 하이르(Iran-shah Ibn Abdal Khayr)로 알려져 있다. 쿠쉬나메의 연대추정은 Iran-Shah가 집필한 다른 저술들을 통해 가능한데 바로 `바흐만나메(Bahman-nameh)`라는 책이다. 바흐만나메는 로스탐(Rostam)에 의해 살해된 에스판드야르(Esfandyar) 왕자의 아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서사시다.
이로써 저자인 이란샤는 페르다우시의 시작(詩作) 방식과 표현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로스탐은 페르다우시의 샤나메에 등장하는 가장 전형적인 고대 페르시아의 영웅이며, 그에 필적하는 또 다른 서사시 영웅이 바로 에스판드야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 자신은 쿠쉬나메 편찬과정에서 페르다우시의 이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쿠쉬나메의 필사본 원본은 영국도서관(The British Museum)에 OR 2780 분류목록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총 243페이지에 달하는 귀중본 컬렉션 목록으로 취급되고 그 중 쿠쉬나메는 41~132페이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각 페이지는 6개장에 99개 쿠플레로 구성되어 있다. 202~213페이지에는 반 페이지에 걸쳐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다.
필사본을 복사한 인물의 이름은 모함메드 이븐 사이드 이븐 압달라 알 까다리(Mohammed Ibn Said Ibn Abdullah al Qadari) 인데, 그의 이름이 맨 마지막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쿠쉬나메의 유일한 판본인 이 복사본은 히즈라 8세기경(서기 14세기)의 것으로 짐작된다. 페르시아 필사본들은 통상 여러 개의 복사본이 존재하는데 쿠쉬나메의 경우 다행스럽게도 히즈라 8세기 복사본이 유일본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쿠쉬나메의 신라부분은 1998년 이란 학자 잘랄 마티니(Jalal Matini) 교수의 현대 이란어 편찬본 기준으로 볼 때 전체 1만129절 중에서 2011절에서 5925절 사이를 구성한다. 한 페이지에는 20개 정도의 절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관련 내용이 상당한 분량임을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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