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다 카렌다에 명기되는 새로운 일정에 국경일, 기념일 그리고 어떤 일을 시행하는 행사일, 그리고 주간행사도 표시된다. 특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권주간이다. 인권(人權)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당연히 인정되는 기본적 권리이다. 그런 주관에 눈에 뜨이는 표어가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문구가 있다. 설명할 여지도 없을 내용으로 사람은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의미로, 조건이나 등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무에 따라서 선후배나, 계급사회, 그리고 직급에 따른 구분은 있지만 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인간적 사이에 차별을 두고 하는 구별을 말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 관계에 차이는 있다. 차이는 서로 차가 있게 다른 것으로, 차의 원 뜻은 물질에 있어서 성질·상태 등의 서로 틀리는 정도나 숫자에 있다. 어떤 수량에서 다른 수량을 감한 나머지 수량으로 또는 능력의 차이나, 듣는 것과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말에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 서로 간의 차별이란 그야말로 인권에 관계되는 용어이다. 차별이란 차등을 두어서 구별되는 것으로, 인종차별, 사람차별 하지 말아라는 것에 쓰이고, 그 반대는 평등이다.  또한 구별이란 것도 종류에 따라 갈라 놓는 상태로, 동식물을 구별하다, 금전으로 사람을 구별 하는구나 등에 쓰는 말에는 용납이 되는 용어다. 분별이란 말도 서로 구별을 지어 가름하는 것으로 어둠 속이어서 누가 누군지 분별할 수 없었다. 사물을 정류에 따라 나눔이나,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을 말할 때 나이가 그만하면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을 두고 남녀차별, 학력, 직업, 빈부, 도농, 재산 따위로 사람의 등급을 정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정말 배제되어야 할 잘못된 관습이다. 여기서 배제는 물리쳐서 없애는 것이다. 차이는 분별이고 비교가 되는 것으로 곳곳에 여러 가지 형태로 구별이 되는 것은 당연한 처사로 여기면 당하는 쪽이 오히려 편안하고 수긍이 가는 때에 새로운 의식이 생긴다.  미국 정부나 사회가 아직도 불식하지 못한 3대 고민이 있다면 인종차별과 마약 그리고 동성연애다. 그 중 인종차별의 대책은 수많은 세대가 흘러도 감당키 어려운 속수무책이다.  인간끼리의 구별인 인종차별은 인종적 편견에 의하여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멸시·박해·차별·대우 등을 하는 일로 어찌할 도리가 없이 손을 묶은 듯이 꼼짝 못 한 상태다. 나의 편, 너의 판 하듯이 또는 완전히 선을 그어 상종조차 잘 하지 않은 곳도 있다, 이발관·목욕탕을 위시하여 병원, 학교, 지역에 국한되는 곳이 지금도 출입에 한계를 느낀다.  심지어 사람의 용모에 따라 백색인종과 유색인종이 따로 구별된다, 유색(빛깔) 피부를 가진 인종이라 하여 천시하고, 백색 인종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적대시하는 풍조다.  필자는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던 기회에 `할렘가`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할렘가는 뉴욕의 맨하튼 북부에 있는 흑인들의 집단 거주지역으로 20만명의 흑인 및 푸에토리코인, 이탈리아계 이민자 그리고 남미 출신의 국민들이 사는 빈민촌이다. 미국 흑인문화의 중심지이며, 흑인차별 철폐운동의 본거지이다.   지구상에 78억의 인간이 살고 있다. 다같이 창조주 하나님이 만든 인간인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의식은 창조법에 어긋난 짓을 인간이 자행하고 있다. 근본은 의식의 차이요, 차별이다.  의식은 언동이나 상태를 분명히 깨닫는 일체의 작용으로 어떤 사물에 대한 주장·감정·이론·견해를 분별하여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자성어에 `천차만별`이란 말에, 모든 사물에는 모두의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다는 뜻이지만 차이와 차별은 분명히 구분이 되는 사용어다. 사람차별은 인간이 할 짓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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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