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를 두고 꽃이 없는 나무라 한다. 지중해 연안이나, 소아시아 지방과 제주도, 일본 등에 서식하며 노지나 온실에서 키우기도 한다. 주로 정원에 심는데 꺾어 꽂아 심어도 번식이 잘 된다.  과실은 생이나 말려서 식용으로, 단백질이 많아 신경통 약재로 쓰인다. 성경에, "무화과 잎이 무성하면 여름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알라"라는 뜻깊은 말씀도 있다.   무화과 나무 그늘이 짙어서 여름더위를 피할 수 있으므로 풍부하고 평화로운 생활의 영속을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영구적인 종교에 대한 심판으로 열매없는 나무로 남게 된다는 유래도 있다.  앞마당에서 자라던 무화과는 추석을 전후로 특유의 색을 뽐내며 익어간다. 과당을 이겨내지 못해 터진 무화과에 벌레가 많다.   무화과는 호불호(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가 명확한 과일이다. 뽕나무과의 낙엽관목으로 봄부터 여름에 걸쳐 꽃이 피고, 꽃자루의 맨 끝에 꽃이 달리는 꽃턱 식물이다. 무화과의 맛은 특유의 작은 알갱이가 씹히는 혼란스러운 식감이 이어져서 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무화과 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피지않는 식물이다. 흔히 열매로 오해하는 초록색 부분은 꽃받침이다. 칼로 자르면 안에 붉은 부분이 꽃이라 한다. 사실 꽃이 안에서 피기 때문에 원칙은 유화과라 한다.  무화과는 인류가 재배한 최초의 과일 중 하나로 꼽힌다. 1만년 전인 중동과 유럽 남부지대에서 처음으로 재배한 식물이다.   그래선지 성경에도 등장한다. 선악과를 베어 문 아담과 이브가 수치심을 느끼며 몸을 가린게 바로 무화과 나뭇잎이다. 일부 성경학자는 무화과를 선악과로 지목한 예도 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으로 `마가복음 11장`에 예수께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매우 시장하셨다. 그때 가까운 곳에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있었으나 제철이 아니었으므로 잎새 뿐이었고 열매가 없었다. 시장하셨던 예수님께서 영원히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나무를 저주하셨다. 그 후 다시 무화과를 보니, 나무는 말라 죽어있었다.  사실 무화과는 꽃이 안에 피기 때문에 독자적인 수분 과정이 필요하다. 수분이란 꽃 식물에서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 머리에 붙어 열매를 맺는 현상이다.  일반적인 식물과 달리 바람이 꽃가루를 퍼뜨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무화과 나무가 선택한게 말벌과의 상생이었다. 무화과 밑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무화과 말벌은 이 통로를 통해 꽃 안으로 들어간다. 꽃으로 들어간 말벌 암컷은 알을까고 죽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수분이 이루어지고 무화과는 말벌의 알을 보호한다고 한다.  여기서 인간이 얻어야 할 깊은 교훈이 바로 `상리공생`이다. 상리공생(相利共生)이란 다른종류의 생물끼리 서로 이익을 얻는 공생상태를 말하며 공생이란 서로 같이 살아남는 것을 뜻한다. 자세히 밝힌다면 딴 종류의 생물이 서로 이익을 주고 받으며 한 곳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다.   공생식물의 경우에 콩과식물과 뿌리혹 박테리아 관계도 그렇고 소라게 껍데기에 말미잘이 착생하여 전자는 후자의 촉수에 의해서 적이 공격을 면하고 서로 공서하는 것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동백꽃과 동박새의 관계도 있다. 그 밖에 악어와 악어새의 경우도 있고, 조기장수와 두부장수의 관계도 묘하다고 한다.  이른 아침에 조기장수가 생선을 팔기 위해서 고함을 지르고 외치고 다니지만, 두부장수는 조기장수 뒤에서 쉽게 `두부도 사세요` 한 마디에 수입이 짭짤한 관계를 이룩한다.   중국 고사에 `수양산 그늘`이란 말이 있다. 자세한 말로 `수양산 그늘이 광동 80리까지 비친다`는 말이다. 한 가문에 훌륭한 인재가 탄생하면 그 집안은 많은 인물이 대거 등용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도 편가르기에 주안을 두고, 고집과 독선은 삼가고 각개 각 분야에 골고루 인재를 기용하고, 무엇보다도 전문인을 세워 후덕한 인품의 소유자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위정자의 금지사항은 자기 주장의 활개이다. 정치적 개방으로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고, 서로를 믿고 인정하는 것이다. 의심이 가는 자 선택하지 말고, 선용했으면 끝까지 믿으라는 교훈이 바로 상생이다. 상생의 나라가 곧 평화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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