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없이 뛰었다. 네댓 점포를 지나 건어물 점포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높게 쌓인 건어물 더미 밖으로 고개를 빠끔 내밀고밖을 살폈다. 까만 교복에 흰 깃, 검은 단발머리가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건어물 더미 앞에는 내 모습을 보라는 듯 유리문이 달려 있었다. 내가 비쳤다. 두려움에 질린 웅크린 모습, 그것은 가난과 맞서지 못하는 비겁한 자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 누가 가난을,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했나? 나는 가난이 부끄러웠다.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내 마음이 또 부끄러워서 나는 나를 쥐어뜯었다.- 내가 외로울 때 中에서경북신문에서 문화 칼럼을 연재 중인 서유진 작가가 장편소설 `내가 외로울 때`를 발간했다.
217쪽의 장편소설에는 `따뜻한 등`, `솜사탕`, `무서운밤`, `엄벙통에 빠린 병아리` 등 20개 소 주제를 담아 그 시절 검은 단발머리를 한 어린 소녀 자신의 감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 작가의 손녀인 전언지(7)양이 그림을 맡아 소녀의 감정을 표현한 듯한 열일곱 점의 그림을 이 책에 실어 눈길을 끈다.
서 작가는 "출간한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느끼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발가벗은 듯한 부끄러움을 가지는 것도, 조금씩 벗어나는 것도, 온전히 주님께서 주신 은혜"라면서 "아쉬움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과정에서 다음 책을 더욱 갈망하게 되니 책을 낸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순례의 길을 걷는 행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독자와 명자가 안겨주는 시선의 짐을 내려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원고를 넘기려고 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기대는 한 사람의 독자라도 자신의 글을 읽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정말 순수한 바람"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림은 맡은 전언지양은 "평소 할머니에게 그림 선물을 정말 많이 했다.할머니 집에 가면 내 그림들이 벽에 주렁주렁 걸려 있어서너무나 좋았고 기뻤다. 할머니가 이야기를 해주시면나는 생각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이 할머니 책에 나온다니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구 신천동에서 태어난 서 작가는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다 교단을떠나 소설에 입문했다.
2013년에 `총각선생, 짱생의 하루`로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후, 2015년에 소설집 `하프턴`(문예바다)이 세종나눔도서로 선정됐다. 2019년에 `나비의 새벽`으로 경주문학상을 받았고, 2021년에는, 나야로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에 선정된 바 있다. 2016년부터 현재 경북신문에서 서유진의 문화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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