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등록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지금, 후보 지지율이 혼전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지난 보선(補選) 이후 이대남이 갑자기 중요한 선거변수가 되고 있다 한다. 그런데 과거 선거 무관심층으로 치부되던 이대남이 왜 갑자기 이번 대선(大選) 판을 흔들게 되었을까?   그간 계속된 출산율의 감소로 사실 선거권을 가지는 이대남이래야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불과 6.7 퍼센트 정도에 불과하지만, 심히 불공정한 사회구조 속에 불어 닥친 제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취업율이 급감하면서 청년세대들이 절망하고 있는 가운데, 현 정권하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발호까지 겹쳐 이대남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거기다가 오로지 정권탈환이 지상과제인 보수 기득권 카르텔이 합세하여 청년들을 자극하면서, 대선 후보를 면밀히 검증해야할 냉철한 이성은 사라진 채, 집단 이기주의와 진영논리에만 매몰된 분노의 감정이 여론을 지배한다.  과거, 전 세계 인류를 엄청난 불행으로 몰아넣은 역사 속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된 원동력은 바로 당시 독일 국민들의 분노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범국(戰犯國)이었던 독일은 주위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전쟁 배상으로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이라, `히틀러`의 인종주의에 기반한 나치즘(Nazism)은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분노에 크게 부응하였고, 일개 무명의 선동가에 불과했던 히틀러를 묻지 마 정치인으로 부상시킨다.  소위 히틀러의 청년 돌격대로 불리던 유겐트(Jugend)들이 나치 완장을 차고 `하일 히틀러!`를 외치고 다닐 때, 양식 있는 독일인들이 그들을 제지하지 못한 것이 결국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끔찍한 참극의 원인이 되었다는 얘기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전쟁이란 영화 속의 게임이나 액션처럼 인식될 수도 있을 터이다. 전쟁을 체험하지도 못했고, 병역도 필하지 못한 정치인이 북한 선제 공격론을 말하고, 그런 정치인에게 열광하는 청년들은 누구인가?   과거 독일의 유겐트들이 히틀러의 주술에 빠져 전쟁광인 그를 지지했지만 그들이 먼저 총알받이가 되었듯이, 전쟁은 모든 국민들의 끔찍한 재앙이긴 하지만 특히 먼저 전장(戰場)에 투입되어 가장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 세대가 다름 아닌 청년 세대들이 아닌가?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비록 우리 청년들에게 희망의 세상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을지라도 막연한 분노에 의한 비이성적 선택이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수구(守舊)가 나 같은 늙은이들의 보편적 정서라면, 항상 미래를 지향해야 할 젊은이들이 낡은 보수 이념에 매몰될 수는 없다. 미래는 바로 청년들의 것이기에…….  요즘, 대선후보 유세장에 울려퍼지는 연호가 하나같이 `하일 히틀러!`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과민함인가?  거듭 강조하지만, 정치인이란 우리가 연호하며 추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얼음같이 차가운 이성으로 그 자질을 검증해야 할 우리의 하수인들일 뿐이다.  국민들을 프레임에 가두기만 하면, 똥막대기만 세워도 당선되는 그런 선거가 선진국 대한민국의 대선일 수는 없다.   대통령이 되면 죽거나 감옥으로 가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을 법 한데, 주역상 청와대나 영빈관을 어디로 옮기는 것으로 끝날 불행인가를 다시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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