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간절히 소망했다. 28여 년 전 온 가족이 13평 형 소형 아파트에서 복닥거리며 살 때다. 이 시절엔 소위 중산층으로 살아보는 게 절실한 소원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딸아이들이 받는 상처에 의해서였다. 당시 주변의 아파트 평형에 따라 학교에선 아이들끼리 서로 패를 가르며 놀곤 했다. 주위에 넓은 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서민 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노는 것을 매우 꺼렸다.  겨울 어느 날 일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간 큰 딸아이가 해가 이울도록 집에 돌아오질 않았다. 딸아이 친구 아파트 동, 호수만 알고 있던 나는 기다리다 못해 직접 딸아일 찾아 나섰다. 딸아이 친구 집 현관 문 앞에서 마악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집안에서 여인의 큰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왔다.  " 그쪽 동네 아이들과 놀지 말라고 했지?" 라는 격앙된 말 소리였다. 딸아이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하는 듯하여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서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분노가 불끈 치솟는 느낌이었다. 가까스로 감정을 억제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여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준다. 열린 문틈으로 잔뜩 주눅이 든 아이가 울상이 되어 신발도 미처 꿰지 못한 채 허둥지둥 뛰쳐나온다. 이 때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보는 교만한 그녀 앞에서 당당히 말했다.  "제 딸이 호화궁전의 땅을 밟아 매우 영광입니다" 그러자 그녀는 더 이상 말대꾸도 못한 채 문을 `쾅` 하고 닫았다. 훗날 딸아이는 어린 시절 그 아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수모가 가슴에 못이 됐다는 말을 남겼다. 딸아이가 친구 어머니로부터 이런 멸시를 당하자 머잖아 나도 가장 잘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할 것이라는 꿈이 더욱 커지고 공고해졌다. 이 때부터 그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나는 이를 앙다물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린이를 상대로 독서 및 논술을 지도하였다. 이 교육 사업은 의외로 번창했다.   큰딸아이가 그 일을 당한지 수년 후 일이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가장 잘 지었다는 아파트로 드디어 입주를 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심경이란 이루 말이나 글로 형언할 수 없으리만치 행복했다. 흔히 말하는 중산층으로 진입 했다는 자부심(?)에 어깨마저 으쓱해졌다. 어디서든 누가 "집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서슴없이 내가 사는 아파트 명칭을 자랑스럽게 댈 정도였다. 그러면, " 이 고장에서 가장 잘 지은 아파트로 소문난 곳 아니냐?" 며 모두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 때 남편 사업도 탄탄대로를 걷게 되고 내가 하는 교육 사업도 세 군데나 분점을 낼만큼 번성했다. 이러다보니 지난날 서민 아파트 살면서 친구들에게조차 우리 집 주소를 선뜻 알려주지 못했던 서민층이라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게 돼 매우 기뻤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 어느 책에서 외국의 중산층 조건에 대한 내용을 읽은 후 얼굴이 화끈했다. 구미를 비롯 영국은 우리처럼 집의 평수, 자동차 배기량, 지닌 부富로 중산층의 조건을 삼지 않는단다. 물질적이 아닌 정신적 기준으로 중산층 여부를 판가름 한다니 그동안 평수 넓은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한껏 우쭐했던 내 자신이 흡사 속물 같아 낯이 뜨거웠다.  외국의 중산층 요건 중 몇 가지를 손꼽아본다면 이렇다.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는 자기 집 만의 독특한 요리솜씨를 몇 가지 지녀야 하는 것을 비롯, 가족 모두가 외국어를 한 가지 이상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단다. 또한 유행에 둔감해야 하고 속옷 바람으로 손님을 맞지 않으며 세탁물을 남 보는데 널지 않아야 한단다.   흔히 외국인들은 개인주의가 심해 예의가 바르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내용에서 그들의 기품 있는 예의범절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남의 주장을 끝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단다. 우린 어떤가. 토론에는 유독 약하다. 그 이유는 자기만 목소리가 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 응석은 받지 말아야 하며, 남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나무랄 수 있어야 한단다. 만약 우리가 타인 자녀를 호되게 꾸중하면 단박에 원수지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이런 경우 중산층의 대열에 동참 할 수 있단다.   이 글을 읽고 오로지 물질의 풍요만이 중산층에 속할 것이라는 지난날 환상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물질이 풍요로워도 정신적 빈곤이 깃들었다면 가난 못지않게 비참하다는 사실을 진즉 깨닫지 못한 우매함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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